2026/06 7

숫자에 갇힌 춤, 화려함에 가려진 숨

춤과 음악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는 가장 원초적인 해방의 언어다.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고 발을 구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사회가 부여한 이름표와 위계를 내려놓고 ‘나’라는 실존의 감각을 회복한다. 그렇기에 예술은 언제나 지친 인간을 품어 안는 따뜻한 도피처이자, 세상의 견고한 질서에 균열을 내는 부드러운 전복의 장이었다. 뉴스를 틀면 화려한 장밋빛 구호들이 쏟아진다.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주가, 드높아진 국가 위상, 그리고 ‘K-콘텐츠’를 위해 투입된다는 역대급 예산. 부산에서는 전임 시장이 예술계의 반발을 무시하며 추진했던 퐁피두 미술관 유치나, 단 3회 공연에 105억 원을 쏟아 붓겠다던 라스칼라 극장 초청 계획이 재검토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들린다. 겉으로만 보면 분명 반가운 변화..

칼럼 2026.06.20

계단의 발명-오름의 미학과 머묾의 윤리에 대하여

인류는 과연 언제부터, 대체 왜 땅을 깎아 계단을 만들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건축의 역사를 묻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내면의 욕망과 사회의 뼈대를 향한 깊은 탐구로 이어진다. 자연이 빚어낸 산과 언덕은 본래 매끄럽게 이어진 하나의 거대한 곡면이다. 그 자체로 오를 수 있는 흙길과 비탈을 굳이 잘게 쪼개어 수직과 수평의 교차로 만든 것은 자연의 연속성을 인간만의 절차로 재편하려는 대담한 시도였다. 한 번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여러 번의 단속적인 승인 과정처럼 나누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계단은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다. 공간을 빌려 시간을 분할한 인류의 놀라운 발명이자, 이동이라는 행위 자체를 통과의 단계로 만들어버린 철학적 선언이다. 도구 하나 없이도 높은 곳에 닿게 해준다는 점에서 계단은..

에세이 2026.06.20

드라이플라워 - 박제된 시간과 피고 지는 것에 대한 애정

우리 일상에서 꽃은 기쁨과 축하, 그리고 위로의 자리에 함께한다. 누군가에게 축복의 마음을 전할 때나 자신에게 작은 다독임을 건넬 때, 우리는 기꺼이 꽃을 찾는다. 환하게 피어난 꽃망울을 품에 안을 때면 그 생명력이 뿜어내는 찬란한 에너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눈부신 아름다움은 야속하게도 너무나 짧다. 꽃잎의 끝자락이 조금씩 말라가며 수분을 잃고, 화사했던 빛깔에 어스름한 갈색 그림자가 깃들기 시작할 때쯤 사람들은 종종 꽃을 거꾸로 매달아 두는 선택을 한다. 자연적인 부패를 막고 수분만 날려 보내 형태를 오랫동안 곁에 두기 위함이다. 그렇게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서 며칠이 지나면, 썩지 않고 바스락거리는 질감만을 남긴 ‘드라이플라워’가 탄생한다. 사람들은 수분이 빠져나간 드라이플라워의 빈티지..

에세이 2026.06.15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사망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지난 11일(현지 시간) 돌아가셨다. 1937년 생인데 생일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88세.세상이 어지럽다보니 좋아하는 예술가의 죽음을 며칠 지나서야 알게 됐다. 호크니의 『명화의 비밀(Secret Knowledge)』 번역본이 나왔을 때, 거금을 주고 사서 마르고 달도록 읽었다. 호크니는 과거의 르네상스 거장들은 어떻게 갑자기 사진처럼 완벽하고 생생하게 세상을 재현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매달렸다. 2001년,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광학 전문가인 찰스 팔코(Charles M. Falco)와 함께 발표한 이 책은 이른바 '호크니-팔코 가설(Hockney-Falco thesis)'이라 불리며 미술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1999년 1월, 런던 내셔널..

The FEDORA – Van Cleef & Arpels Prize for Ballet

반 클리프 앤 아펠(Van Cleef & Arpels)은 1896년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된 세계적인 하이엔드 럭셔리 주얼리 및 시계 브랜드다. 이 브랜드에 관해 아예 관심이 없었는데, 김건희 때문에 알게 됐다. 뉴스에 저 이름이 나왔을 때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라는 기분이 들었다.그랬다. 반 클리프는 무용과 관계 깊은 브랜드였다.‘The FEDORA – Van Cleef & Arpels Prize for Ballet'이 상은 2015년 세계적인 주얼리 하우스 Van Cleef & Arpels과 유럽의 오페라 및 무용 지원 비영리 단체인 페도라(FEDORA)의 파트너십을 통해 제정되었다.반 클리프 아펠은 1920년대부터 파리 오페라 극장과 교류하며 무용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으며, 1940년대에는 무용..

춤 비평, 리뷰 2026.06.11

예의는 왜 필요한가.

향수를 선택할 때 장소와 의상 날씨 등을 고려하고, 몸에 뿌릴 때도 너무 과하지 않게 뿌리면 다른 사람이 향수를 뿌린 사람을 다시 보고 호감을 갖게 된다. 이와 달리 분위기나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향수를 선택하고, 뿌리는 것도 과하게 뿌린 사람을 만나면, 사람이 보이기보다 ‘무슨 냄새인데 이렇게 과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된다. 개인 취향은 존중해야 하지만, 그 취향이 타자가 받아들일 정도를 넘어선다면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이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배려의 문제다. 인간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마련이고,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타자에 의해서만 증명된다. 타인을 배려해야하는 것은 나도 언제나 타인이어서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환대해야만 각자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타자를 배려하고 이..

에세이 2026.06.10

기준 없는 토대 — 공공 공연장의 진정한 자리에 대하여

지금 부산 문화 지형도는 어느 때보다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기존 공공 공연장에 더해, 곧 개관할 부산 오페라하우스와 이미 관객의 숨결로 채워지기 시작한 부산 콘서트홀, 그리고 낙동 아트센터 등 새로운 예술 공간이 속속 시민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을 담아낼 그릇이 많아졌다는 것은 지역 문화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분명 반갑고 설레는 일입니다. 하지만 외형적 확장이 곧장 자생적인 예술 생태계의 만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새롭게 들어서는 공공 공연장들이 저마다의 뚜렷한 철학 없이 기존 역할을 답습하거나 중복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면, 결국 객석을 채우기 위한 불필요한 출혈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수치화된 성과와 흥행만을 잣대 삼아 지원의 편중이 발생하..

칼럼 202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