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부산 문화 지형도는 어느 때보다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기존 공공 공연장에 더해, 곧 개관할 부산 오페라하우스와 이미 관객의 숨결로 채워지기 시작한 부산 콘서트홀, 그리고 낙동 아트센터 등 새로운 예술 공간이 속속 시민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을 담아낼 그릇이 많아졌다는 것은 지역 문화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분명 반갑고 설레는 일입니다. 하지만 외형적 확장이 곧장 자생적인 예술 생태계의 만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새롭게 들어서는 공공 공연장들이 저마다의 뚜렷한 철학 없이 기존 역할을 답습하거나 중복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면, 결국 객석을 채우기 위한 불필요한 출혈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수치화된 성과와 흥행만을 잣대 삼아 지원의 편중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고군분투하는 지역 예술가들이 오히려 소외되는 결과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과제는 각 공연장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입니다. 다행히 최근 부산 공공 공연장의 기능 재정립과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무적인 기능과 운영이라는 행정적 외투를 입히기에 앞서, 공공 공연장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떤 철학적·미학적 고민 위에서 작동해야 하느냐는 근원적인 질문을 반드시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공공(公共)’이라는 단어 앞에서 엄격하고 견고한 기준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다수의 동의, 수치화된 성과, 제도적으로 합의된 가치라는 단단한 기준 말입니다. 하지만 제도나 행정의 엄격한 규범을 예술 영역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려 할 때, 종종 예술 본연의 생명력이 질식하는 서늘한 한계에 직면하곤 합니다. 특히 모든 것이 데이터로 환산되고 인공지능이 사회 전반의 매뉴얼과 효율을 주도하다시피 하는 오늘날 현실에서 정해진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예술가의 어깨는 화려한 조명 뒤에서 무겁게 처지곤 합니다. 그렇다면 양적 팽창을 맞이한 부산의 공공 공연장들은 과연 어떤 자세로 존재해야 할까요? 역설적으로 진정한 공공의 극장은 어떤 절대적인 잣대나 획일화된 평가의 틀도 존재하지 않는 ‘기준 없는 토대(Groundless Ground)’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철없는 생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준 없는 토대’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절대적 진리나 보편적 이성이라는 맹신을 해체하며 현대 인문학이 치열하게 도달한 사유의 풍경입니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철학에의 기여』 등의 저작을 통해 모든 것을 계산하고 평가하려는 서양 철학의 뿌리 깊은 '근거율(Der Satz vom Grund)'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존재의 진정한 바탕은 그러한 잣대가 부재하는 ‘심연(Abgrund)’이라고 통찰했습니다. 그에게 심연은 단순한 절망이나 허무의 늪이 아니라, 외부의 잣대 없이 존재가 비로소 고유하게 숨 쉴,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인식론의 영역에서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미국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철학과 자연의 거울』을 통해 우리의 앎을 지탱하는 절대적이고 선험적인 기준은 없다는 '반정초주의(Anti-foundationalism)'를 역설했습니다. 그는 견고한 토대가 없음을 겸허히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연성 속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진정한 ‘연대(Solidarity)’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 같은 후기 구조주의 정치철학자들 역시 사회를 지탱하는 절대적 필연성은 없으며, 우리의 삶은 언제든 허물어지고 재구성될 수 있는 '우연적 토대(Contingent Foundation)' 위에 놓여 있다고 논증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깊은 철학적 통찰을 극장의 무대 위로 조심스레 옮겨 봅니다.
전통적으로 극장은 완성된 미학, 자본의 논리, 혹은 이른바 주류라는 굳건한 토대 위에 세워져 왔습니다. 철학이 절대적 진리라는 환상을 허물고 우연과 연대의 가치를 발견했듯, 공공 공연장 역시 누군가를 배제하고 평가하기 위해 겹겹이 세워둔 기준의 장벽을 과감히 허물어야 합니다. 자격 증명을 요구하는 잣대가 사라진 텅 빈 심연의 자리는 허무가 아니라, 비로소 어떠한, 낯설고 연약한 예술도 조건 없이 환대받을 가능성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부산의 늘어난 공공 공연장들이 저마다 기능적 차별화를 꾀하기 전에, 이처럼 '판단 중지'의 공간으로서 내어주는 넉넉한 철학을 먼저 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준이 사라진 무대 위를 채우는 것은 결국 날것 그대로 자유로운 ‘인간-예술가’입니다. 정해진 정답이 없는 토대 위에서 예술가는 자유롭게 세계를 직조합니다. 특히 무대 위에서 무용수의 몸이 빚어내는 질감과 양감, 허공을 가르는 팽팽한 압력과 장력은 그 자체로 고유하고도 강렬한 언어입니다. 이토록 생생한 물리학적 물성과 세계와 부딪히며 감각을 여는 살아있는 몸은 어떤 수치화된 기준이나 제도의 잣대로도 평가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증명입니다. 새롭게 열리는 공공 공연장들은 바로 이 연약하지만, 눈부신 인간의 물성이 안전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무구한 바탕이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리처드 로티가 말했듯,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이 없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습니다. 늘어난 공공 공연장의 진정한 기능이 숫자로 환산되는 효율적인 문화 소비에만 갇혀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세상의 촘촘한 기준에서 밀려난 이들, 좌절 속에서도 묵묵히 땀방울을 흘리며 기꺼이 몸을 움직이는 예술가들에게 먼저 곁을 내어주는 따뜻한 품이 되어야 합니다.
예술은 본디 정해진 길을 안전하게 걷는 것이 아니라, 길 없는 곳에 기꺼이 발자국을 남기는 일입니다. 새롭게 지형을 그려가는 부산 공공 공연장들이 스스로 ‘기준 없는 토대’를 자처하며 서툴고도 아름다운 몸짓을 보듬어 안을 때, 비로소 차가운 무대 바닥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연대의 장으로 온기를 띨 것입니다. 그 온기 속에서 피어나는 예술가들의 빛나는 숨결을 오래도록 객석에서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술의 초대, 202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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