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몸은 기억하고, 정책은 망각한다

lsanghe64 2026. 1. 1. 18:43

몸은 기억하고, 정책은 망각한다

이상헌(춤 비평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문화예술 정책은 새 이름으로 돌아온다. 그런데도 우리는 같은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된다.

예술에서 즉흥은 준비 없는 상태에서 우연히 터져 나온 산물이라거나, 돌발 행동쯤으로 오해받곤 한다. 하지만 예술가의 즉흥은 고도의 정신 활동이다. 일반적인 창작이 구상과 스케치, 수정과 완성을 거치며 분리되어 진행된다면, 즉흥은 모든 과정이 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시간의 압축이다. 현대 예술은 즉흥을 천재의 신비로운 영감이라기보다, 철저하게 훈련된 신체화된 지능으로 이해한다. 현대 무용가가 무대 위의 돌발 상황을 유려한 춤사위로 승화시키는 것은 그들의 몸속에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와 감각의 지층 덕분이다. 한국 민속춤에도 이러한 즉흥성이 충만했다. 비록 근대화 과정에서 무대 양식으로 규격화되었지만, 그 즉흥은 신명에 닿는 순간 몸이 먼저 열리며 터져 나오는 춤사위로, 지금도 훈련된 자유의 끝을 보여준다. 이처럼 예술적 즉흥은 가장 치열하게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예술적 즉흥의 본질은 우리 전통 건축의 독특한 기법인 그렝이질과 깊게 맞닿아 있다. 전통 목조 건축에서 기둥을 세우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평평하게 다듬은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는 정평주초와 자연석의 울퉁불퉁한 표면에 맞춰 나무 기둥 밑면을 깎아 세우는 덤벙주초. 정평주초가 인공적인 평면을 만들어 그 위에 기둥을 세우는 방식이라면, 덤벙주초는 자연의 굴곡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끌어안는 방식이다. 이때 울퉁불퉁한 돌의 표면 굴곡을 나무 기둥에 그대로 옮겨 깎아내는 작업이 그렝이질이다. 목수는 주춧돌과 기둥이 한 몸처럼 맞물릴 때까지 깎고 세우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세워진 기둥은 마치 돌에 박힌 듯 견고해, 어지간한 지진이나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부안 내소사 봉래루나 불국사 같은 고건축이 오래 버틴 배경에는, 자연의 요철을 끌어안는 기술이 있다. 인공을 자연에 억지로 끼워 맞추거나 바닥을 평평하게 갈아내는 대신, 기둥 자체가 울퉁불퉁한 요철을 끌어안음으로써 얻어낸 단단함이다. 예술가들이 척박한 환경과 급변하는 무대 상황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창작을 지속해 온 힘 역시, 거친 현실의 표면에 자신의 예술을 밀착시키는 즉흥이라는 이름의 그렝이질 덕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을 대하는 정책의 태도는 어떨까. 예술가가 역사와 현장을 기억하고 반영하는 그렝이질을 수행하는 반면, 예술 정책은 너무나 자주 망각하고 경직된 정평주초방식을 고집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현장의 복잡다단한 맥락과 울퉁불퉁한 특성을 행정 편의라는 잣대로 평평하게 밀어버리려 한다. 획일화된 심사 기준, 과도한 정산 서류, 단기 성과 위주의 평가는 제각각 다른 예술이라는 주춧돌을 무시하고, 그 위에 규격화된 기둥만을 세우려는 시도와 다름없다. 표준은 필요하지만, 표준이 현장의 요철을 지우는 순간, 공정은 공평이 아니라 무감각이 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정책이 보여주는 나쁜 즉흥이다. 정책의 즉흥은 준비 부족을 감추기 위한 임기응변에 가깝다. 장기적인 비전이나 현장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당장의 여론이나 예산 집행 속도에 떠밀려 급조되는 정책이 난무한다. 정부가 ‘K-컬처 산업 300조 시대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장밋빛 전망을 쏟아낼 때, 산업의 속도와 예술의 속도는 본래 다르다는 사실이 자주 잊힌다. 정작 그 산업을 떠받쳐야 할 기초예술의 토양은 메말라가고 있다. 화려한 열매에는 환호하지만, 열매를 맺기 위해 어둡고 거친 땅속에서 뿌리 내리는 씨앗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장의 확대를 말하는 목소리가 클수록, 시장을 지탱할 기초예술의 느린 성장을 보호하는 설계는 더욱 섬세해져야 하는데도 현실은 정반대이다.

 

진정한 의미의 문화예술 지원은 예술가가 가진 몸의 기억과 그들이 수행하는 치열한 그렝이질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정책 역시 현장의 역사와 맥락을 몸으로 기억해야 한다. 위기 때마다 쏟아내는 휘발성 짙은 정책적 즉석 화법이 아니라, 거친 현실의 지형을 면밀히 살펴 그 위에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행정적 구조를 세우는 정책의 그렝이질이 절실하다.

예술은 규격화된 공산품이 아니며, 예술가는 제각각 모양을 가진 자연석이자 자연목이다. 울퉁불퉁한 주춧돌 표면 굴곡을 따르는 기둥처럼, 정책은 현장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 지원이 없으면 멈추고, 지원이 있어도 지속을 장담할 수 없는 단기 과제 수행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긴 호흡으로 축적하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예술가의 몸처럼, 이제 정책도 기억하고 축적하는 법을 배울 때이다. 그래야만 예술과 정책은 서로 어긋나지 않고,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집을 함께 지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12월31일, 국제신문 인문학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