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리모델링이 우리에게 건네는 의미

lsanghe64 2026. 3. 30. 22:26

부산 공연예술의 심장이자 시민들의 숱한 희로애락이 서린 공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이 38년 만에 긴 휴식에 들어갔습니다. 1988년 개관 이래 부산의 미적 지평을 지켜온 상징적인 공간이 내년 1월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리모델링을 시작한 것입니다. 낡은 무대 기계를 교체하고 관객 편의를 도모하는 잠시 멈춤은 단순히 노후 시설을 고치는 공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품어온 예술적 기억을 정돈하고, 다가올 미래의 예술을 맞이하기 위해 근육을 재정비하는 실존적 성찰의 시간과도 같습니다.

 

물론 이 멈춤이 주는 무게는 가볍지 않습니다. 당장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차갑기만 합니다. 시립예술단의 정기공연 무대가 바뀌고, 지역의 많은 공연물이 갈 곳을 찾아 헤매는 등 공연 생태계 전체가 감내해야 할 진통이 적지 않습니다. 예술가에게 무대는 단순한 발표의 장을 넘어 삶의 숨결을 내뱉는 호흡의 통로입니다. 그 통로가 잠시나마 좁아진다는 사실은 창작자들에게는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을, 관객에게는 오랜 벗을 만나지 못하는 듯한 공허함을 안겨줍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고단한 멈춤을 기꺼이 함께 견뎌야 할 이유는 명확합니다. 더 안전하고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드는 일은, 결국 예술가가 더 자유롭게 상상하고 관객이 그 세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기다림의 시간 동안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예술을 즐기는 태도를 두고 대중과 비평가라는 두 편으로 나누어 생각하곤 합니다. 대중은 쉽고 직관적인 감동을 원하고, 비평가는 어렵고 정교한 논리를 즐긴다는 이분법적 도식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예술의 본질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직관적인 감탄과 정교한 분석은 결국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두 줄기와 같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뜨거운 전율이 없다면 비평의 언어는 차가운 박제가 되고, 예술이 주는 전율의 정체를 탐구하는 안목이 없다면 감동은 찰나의 감각으로 휘발합니다. 따라서 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이 두 가지 시선을 조화롭게 융합시켜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의 문턱을 넘는 과정은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유년의 기억과 무척 닮았습니다.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는 순간, 중력과 싸우며 스스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핸들이 흔들리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누구도 자전거를 만든 제작자에게 왜 이렇게 타기 힘들게 만들었느냐라고 화 내지 않습니다. 자전거라는 도구를 부리기 위해 내 몸이 먼저 균형 감각을 익히고 페달을 밟는 능동적인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은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감상자가 작품의 세계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갈 때 비로소 완성되는 상호 작용의 산물입니다. 특히 무용과 같이 언어 너머의 세계를 다루는 예술은 감상자의 페달 밟기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이 지점에서 감상자의 노력은 의무가 아닌 설레는 탐험이 됩니다. 안무가가 걸어온 창작의 궤적을 살피고, 무용수의 근육이 그려내는 찰나의 선율에 집중하는 일은 작품이라는 미지의 숲을 탐험하기 위한 지도를 챙기는 것과 같습니다. 무대 조명의 각도, 공기를 진동시키는 음향의 질감, 무대 세트가 상징하는 메타포를 읽어내려 노력할 때, 무대는 비로소 우리에게 숨겨둔 비밀을 들려줍니다. 이러한 노력은 결코 예술가의 불친절함에 대한 복종이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의 고독한 분투에 귀를 기울이려는, 인간이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형태의 환대입니다.

 

대극장 문이 닫혀 있는 지금, 부산문화회관의 공공적 역할은 더 고도화된 소프트웨어의 광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공연장이 단순히 무대를 빌려주는 물리적 공간에 그친다면 그 존재 이유는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물리적 무대가 부재한 시기일수록, 부산문화회관은 시민이 예술이라는 바다를 항해할 수 있도록 돕는 다정한 등대이자 나침반이 되어야 합니다. 시민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예술적 언어를 익힐 수 있도록 풍부한 텍스트를 제공하고, 창작자와 시민이 격의 없이 만나 예술적 고뇌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프리렉처(Pre-lecture), 찾아가는 워크숍, 깊이 있는 비평이 담긴 콘텐츠 제작 등은 시민을 능동적인 감상자로 길러내는 가장 가치 있는 공적 투자가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시민을 위하는 길은 예술의 수준을 대중의 기호에 맞추어 하향 평준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더 높은 미적 가치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석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입니다. 잘 정돈된 극장은 공연의 해석을 돕는 강력한 도구가 되는 것이어서, 리모델링 과정의 불편함은 더 넓은 세계를 보기 위해 망원경의 렌즈를 닦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어 있는 무대는 죽은 공간이 아닙니다. 다시 채워질 에너지를 응축하는 거대한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예술은 아는 만큼 보이고, 공들인 만큼 들리는 세계입니다. 시민이 스스로 정보를 찾고, 예술가의 고뇌를 추적하며, 무대의 작은 변화에도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로 거듭날 때, 부산의 예술 생태계는 비로소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지금의 정비 시간은 우리가 예술이라는 지적·감성적 산맥을 넘기 위해 등산화 끈을 다시 조여 매는 시간입니다.

 

1년 뒤, 새롭게 단장한 대극장의 문이 다시 열릴 때,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무대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예술가를 향한 막연한 거리감이나 물리적 환경에 대한 아쉬움 대신, 우리 안의 감각을 깨우는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며 새로운 시대의 지평으로 함께 나아갔으면 합니다. 그 문 앞에서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온 것은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서로의 삶을 깊이 있게 껴안을 줄 아는 준비된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1년 뒤의 찬란한 재회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예술을 향한 다정한 페달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산문화회관 발행 <예술의 초대> 26년 4월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