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청년 춤꾼 A에게

lsanghe64 2025. 12. 8. 20:22

우리를 옥죄던 팬데믹의 끝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긴 지금 부산 춤판을 되돌아보아도 좋겠다. 부산 춤판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역설적이다. 개인과 민간 단체 공연이 위축되고, 무대에서 새로운 얼굴을 만나기도 힘든데, 주위에는 춤이 넘쳐난다.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엄청난 관심을 끌었고, 출연했던 춤꾼들이 온갖 TV 프로그램에 나온다. 가난한 거리의 춤꾼이 연예인이 되었다. 아이들은 이른바 방송 댄스를 배우기 위해 무용학원으로 몰려가고, 무용학원은 큰 수입원 하나를 확보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에서 대학 무용은 뮤지컬이나 실용무용의 끈을 부여잡고 겨우 숨만 쉬고 있다. 기초예술의 중심이 무너진 동시에 권위와 서열을 중시하는 문화가 약화하였다. 문화재 종목 중심의 전통춤 공연은 끊이지 않는 것에 반해 창작 공연 보기는 쉽지 않았다. 공공지원이 없으면 상상은 안무 노트 안에서 맴돌다가 한 발짝 나아가기도 힘들다. 어렵사리 기회를 잡아도 아이디어를 구현할 춤꾼을 찾지 못해 많은 부분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공 지원 의존도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공공 무용단의 역할이 재조정 되고 있다. 이것이 2022년까지 그리 안녕하지 못했던 부산 춤판의 상황이다. 부산 춤판의 상황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판단은 그때는”, “예전에는이라는 기성 춤판의 과거를 기준 삼아 현재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상황은 양면이 있다. 나쁘기만 하거나 좋기만 한 상황은 거의 없다.

 

예술 사조를 보면 혼란 뒤에는 늘 변화가 따라왔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 유럽을 휩쓸었던 데카당스는 기존체제가 몰락하고 새로운 질서가 미처 형성되지 않은 과도기에 나타난 현상으로, 1차 세계대전 후 소멸하고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나타났다. 부산 춤판은 기존 질서가 팬데믹으로 무너지고 있지만, 그것을 대체할 뚜렷한 새로운 체제가 형성되지 않아 상황이 역설적으로 맞물려 있는 상태이다. 곧 새로운 흐름이 자리 잡을 것이고 주역은 지금 20대부터 30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부산 춤판의 앞날을 논의하는 자리에 기성 무용가들만 앉아있다. 자기들이 활동했던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은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라고 말한다. 걱정하지만, 과거와 비교한 걱정일 뿐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 여기 청년 춤꾼들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필자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빠져도 된다. 기성세대는 그들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고, 그들을 위해 고민하지 않는다고 고백해야 한다. 그 고백이 가능하다면 부산 춤판 희망의 반은 찾을 수 있다.

 

기성세대의 고백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그 희망은 젊은 춤꾼들이 자기 위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서 시작한다. 춤이 춤꾼의 몸에서 몸으로 이어져 비언어적으로 발화하는 예술인 것은 분명하지만, 춤을 체화하고 확산하는 일은 스승이나 선배가 아닌 온전히 춤꾼 자신의 몫이다. 기성 춤판에 기대지 말고, 기대하지도 않아야 한다. 앞선 세대를 존중하되 주눅들 필요는 없다. 여전히 기성세대가 대부분의 결정권과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다음 세대를 좌지우지하지 못한다. 젊은 춤꾼들은 기성세대에게 더 요구해도 된다. 기성의 권위는 젊은이의 등을 밟고 지탱하기 때문이다. 젊은 춤꾼이 웅크린 몸을 곧게 펴면 기성의 권위는 미끄러져 내려 서로 동등한 위치에 선다. 그렇게 젊은 춤꾼들이 자기 위상을 찾을 때 부산 춤판의 희망은 있다. 변화의 도도한 물결은 누구도 거부하거나 피해 갈 수 없다. 청년 춤꾼 A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그대, 웅크린 몸을 펴고 변화를 이끌어라!

(2023.0126. 국제신문 기고. '지난해 부산 무용계 회고와 새해 전망에 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