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환의 시대, 예술적 순수는 무엇인가

lsanghe64 2025. 12. 8. 19:49

오늘날 우리는 예술을 순수대중으로 구분하는 데 익숙하다. 순수예술은 고상하고, 대중예술은 가볍다는 인식은 오랫동안 문화의 저변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 구분은 예술의 본질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조건과 사회적 위계가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다.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묻는 광장의 함성이 여전히 생생한 지금, 한 가지 질문을 더해야 할 것 같다. 예술적 순수란 무엇이며, 그 개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가?

순수예술 개념은 18세기 유럽에서 등장했다. 계몽주의가 기존의 사유 체계를 흔들고, 미학이 철학의 한 분과로 자리 잡으면서 예술은 기능과 효용을 넘어서는 자율적 영역으로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했다. 정치적 목적이나 도덕적 교훈에서 벗어나, ‘자기 목적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테오필 고티에는 예술은 예술을 위해 존재한다라고 말했고, 오스카 와일드는 모든 예술은 무용하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예술이 외부 권위에 종속되지 않고 고유한 법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미학적 태도를 분명히 밝힌 것이었다.

하지만 순수예술은 단지 사상적 관념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변화에 대한 예술계의 실천적 응답이었다. 프랑스혁명으로 귀족 중심의 예술 후원 체제가 무너지고, 예술은 점차 부르주아 계층으로 확산했다. 산업혁명은 예술의 대중화와 상품화를 가속했고, 인쇄술, 사진, 영화 등 새로운 매체들이 등장하면서 유통 구조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대중예술은 상업성과 접근성을 중시했고, 이에 대응하여 순수예술은 자율성과 심미성, 형식미를 고수하며 상업예술과 거리를 두었다. 그렇게 두 영역은 분화하고 위계화되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이 구분에 점차 균열이 생겼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전통 예술 제도를 비판하며 새로운 형식을 탐색했고, 팝아트는 일상 사물과 대중문화를 예술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앤디 워홀의 작업은 예술이 고상한 형식이나 전통성만으로 정의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로 인해 순수냐 대중이냐라는 이분법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이후 예술을 이해하는 기준은 장르의 위계가 아니라 창작의 맥락, 수용 방식, 시대 감수성에 더 깊이 기반하게 되었다.

한국 예술의 흐름은 서구와 다르게 전개되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예술은 한국 자생적 흐름을 지속하기 어려웠고, 1960년대부터 대학을 중심으로 서구식 예술 교육이 제도화되면서 서구의 미술, 음악, 무용이 순수예술로 정전화되었다. 한국화와 정악, 무대화된 전통춤도 그 분류 아래 편입되었다. 반면 민속예술과 대중이 누리는 예술은 낮은 위상의 문화로 간주했다. 이러한 이분법은 정책과 제도에 의해 재생산되며 오늘날까지 사회적 인식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예술계에서는 순수예술이라는 용어가 마치 대중예술이 순수하지 않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현재는 공식적으로 기초 예술이라는 보다 기능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의 이분법적 구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실 예술적 순수는 형식이 아니라 태도에서 출발했다. 애초 유럽에서 순수예술 개념이 탄생했을 때도, 권력에 주눅 들지 않고 자본에 길들지 않으며, 창작의 자유를 지키려는 예술가의 실천적 태도를 순수로 간주했다. 현실을 직시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균형감각, 자기검열을 넘어서 표현의 윤리를 추구하는 용기가 예술적 순수의 본질이라면, 그것은 도달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향해야 하는 태도일 것이다. , 순수는 고정된 명사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동사적 개념이라는 의미이다.

202412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우리 사회는 새로운 전환 국면에 들어섰다. 수많은 시민이 광장에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정치는 더 이상 정치인만의 일이 아닌 우리 삶의 중심이 되었고, 예술가들 역시 그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거리에서, 무대 위에서, 온라인 공간에서 예술이 살아 움직였다. 광장에서 울려 퍼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단순한 히트곡 소비가 아니라, 굴절된 권력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시민의 열망을 예술적으로 응축한 상징이 되었다. 이 사례는 예술적 순수가 특정 형식에 갇힌 개념이 아니며, 대중적인 양식 속에서도 시대와 맥락에 반응하는 태도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대가 혼란할수록 예술적 순수는 더 중요해진다. 예술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묻는 근본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기 때문이다. 예술적 순수가 예술가의 태도와 공동체의 감수성 속에 깃든다면, 순수와 비순수의 형식적 구별은 오히려 본질을 흐릴 수 있다. 최근 우리 공동체가 깨달은 성찰의 지점은, 형식 너머를 바라보게 한 서늘하고 치열한 경험이 시대 전환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5.0709 국제신문 인문학 칼럼)

 

#순수예술 #기초예술 #대중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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