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이름의 화려한 오해
우리는 흔히 예술가를 가리켜 ‘영혼이 자유로운 존재’라고 부르곤 합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캔버스 앞에 서거나, 세상의 문법과는 동떨어진 언어로 시를 읊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일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된 초월적 존재를 목격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술가가 아닌 이들이 보기에 그들의 독특한 발상과 파격적인 행보는 창작의 근원이며, 그것은 곧 규제 없는 자유의 결과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등식은 예술가라는 존재의 고뇌를 지나치게 낭만화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단언컨대, 예술가는 본래부터 자유로운 존재라기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간절히 갈구하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구속 없는 영혼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것을 마다할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술가만이 특별히 갈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실상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창살을 부여잡고 파란 하늘을 꿈꾸는 수인(囚人)들입니다.
문화적 DNA와 예술의 문법
예술가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규칙의 자장 안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법과 도덕, 관습이라는 규칙은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예술가가 그토록 처절하게 싸워 얻어내려는 자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술의 규칙’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예술에 무슨 규칙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 수만 년 동안 쌓아온 거대한 경험의 축적입니다. 수만 년 전 동굴 벽화에서 현대 미디어 아트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세계를 감각하고 재현해 온 방식은 강력한 ‘문법’이 되어 우리 몸속에 문화적 DNA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강조한 ‘모방(Mimesis)’의 원리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고전적 미학의 틀은 예술가가 창작의 길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거대한 벽이자 지침서입니다.
놀이를 즐기기 위해 규칙을 먼저 숙지해야 하듯, 예술가 역시 인류가 쌓아놓은 예술의 역사와 규칙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훈련부터 시작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로 인정받는 순간은 규칙을 몰라서 무시할 때가 아니라, 규칙을 완벽하게 내면화한 뒤 그 안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찾아내 ‘규칙 속의 자유’를 성취했을 때입니다.
가능태의 존재, 그리고 삶이라는 예술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예술가의 분투는 우리 평범한 이웃들의 삶과 궤를 같이합니다. 직장인, 학생, 농부, 어부까지 우리 모두는 주어진 환경과 직분이라는 규칙 속에서 자신만의 자유를 확보하려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숭고하게 수행하는 모든 이는 이미 잠재적인 예술가입니다.
물론 모든 행위가 예술이 될 수는 있어도, 모든 이가 예술가로 불리지는 않습니다. 여기에는 ‘선택’과 ‘맥락’이라는 중요한 지점이 존재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 틀을 빌려 표현하자면,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가능태(Dynamis)의 존재입니다. 수많은 가능성 중 어느 한쪽으로 온 힘을 쏟아 부어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날 때, 즉 현실태(Energeia)로 화할 때 비로소 예술가가 되고, 학자가 되며, 능숙한 전문가가 됩니다.
우리가 각자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규칙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 안에서 어떤 맥락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평범한 노동이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기도 하고 단순한 생존 수단에 머물기도 합니다.
고립을 선택한 자들의 무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자유란 결코 무한정하거나 경계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설령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다고 해도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바다의 물때를 익혀야 하고, 바람의 방향과 기온의 변화라는 자연의 규칙에 순응해야 합니다. 자유의 자리는 언제나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파악하고 그 속의 규칙을 인정할 때 비로소 확보됩니다.
종교 수도자들이 세속과 단절된 채 수행에 정진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인위적으로나마 관계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직 절대자와의 관계라는 엄격한 규칙 속에 스스로를 가둠으로써, 오히려 그 안에서 종교적 초월과 진정한 영혼의 해방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예술가가 작업실이라는 고립된 섬을 갈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의 번잡한 관계망에서 벗어나 창작의 고통 속에 매몰될 때, 역설적으로 가장 순도 높은 자유를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숭고한 타협을 위하여
영혼의 자유를 쫓는 예술가나 신의 뜻을 구하는 종교인이나, 그들이 누리는 자유 뒤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혹독한 대가가 따릅니다. 고독, 경제적 궁핍, 혹은 자아와의 처절한 싸움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적당한 선에서 규칙과 타협하고 그 안온한 틀 안에 머무는 삶을 선택합니다.
여기에서 감히 어떤 선택이 더 낫거나 가치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규칙에 순응하며 공동체를 지탱하는 삶의 무게와, 그 규칙의 끝을 밀어내며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예술적 삶의 무게는 그 본질에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규칙 아래 있든, 그 속에서 '나다움'이라는 자유의 한 조각을 건져 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오늘도 일상의 규칙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맥락을 만들어가는 당신의 발걸음이 세상 어떤 작품보다 아름다운 예술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캔버스 위에서 규칙을 딛고 자유를 그려 나가는 동료 예술가들입니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드라이플라워 - 박제된 시간과 피고 지는 것에 대한 애정 (0) | 2026.06.15 |
|---|---|
| 예의는 왜 필요한가. (0) | 2026.06.10 |
| 당신의 코골이는 나의 안심(安心) (0) | 2026.03.10 |
| '고독'과 '소외'의 본질적 차이 (0) | 2026.02.28 |
| <병오년 나의 바람> (1) | 2026.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