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병오년 나의 바람>

lsanghe64 2026. 1. 2. 22:18
춤 비평으로 등단 한 직후부터 공연장에서 메모를 했다.
어두운 객석에서 메모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대 조명이 밝아 지는 순간에 단어 몇 개를 갈기듯 쓰곤 했다.
지금은 무대를 보며서 어둠 속에서 수첩을 보지 않고 지렁이 기어가듯 메모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리뷰를 쓸때는 메모에 많이 의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둠 속에서 불편하게 메모하는 이유는
메모하면서 생각이 정리되기 때문이다.
작품 진행 중 중요한 부분이나 키워드라고 생각하는 단어와
짧은 문장을 크게 써두는데, 주로 그것이 도움이 된다.
오늘 책장에서 자료 찾다가 문득 쌓여있는 수첩이 눈에 들어왔다.
수첩 한 개에 적게는 두 작품, 많이는 네 작품에 관한 메모가 있고
저런 수첩이 스물 다섯 개다.
어둠 속에서 메모하다 보니 수첩의 질감과 필기구가 좋아야 해서
여러 수첩과 필기구를 써보았다.
수첩은 스탠다드 리갈 미니 패드가 좋아 많이 사두었다.
필기구는 볼펜, 사인펜 굵기를 바꿔가며 써보다가 최근 겸공몰에서 구입한 펜이 여태 써 본 필기구 중에 필기감이 제일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비싸고 잉크 리필이 어려워 아껴 써야해서 안타깝다.
다른 사람은 도저히 알아 볼 수 없는 암호 같이 긁적인 지난 공연 메모를 버리려고 했다가 이것도 기록이지 싶어서 남겨두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공연 리뷰를 쓸 수 있을까 싶은데
수첩 50개만 채우면 좋겠다.
올해도 그 목표를 위해 부지런히 보고 써야지.
사실 공연이란 것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예술가가 하고 싶어서
제 할 일을 하는거니까
나도 누구에게 도움이 되든 말든 하고 싶은 일을 하는거다.
아무쪼록 부산 춤꾼들의 호흡이 세상에 온기를 주고
그 온기를 글로 옮기고 싶은 게 올해 나의 바람이다.
(2026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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