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르강튀아의 빛이 전하는 안부: 역원근법, 보이지 않는 뒤쪽을 껴안는 시선

lsanghe64 2026. 4. 3. 22:26

사건의 지평선 위로 휘어진 진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대중을 가장 압도한 것은 거대 블랙홀 가르강튀아의 형상이었다. 물리학자 킵 손(Kip Thorne)의 계산을 바탕으로 구현된 이 시각적 재현은 우리가 알던 우주의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블랙홀 주위를 감싸는 광륜(accretion disk)이다. 실제로는 블랙홀의 뒤편에 있는 빛의 고리가 강력한 중력 렌즈 효과(Gravitational Lensing)에 의해 위아래로 꺾여 올라와 관찰자의 정면에 모습을 드러낸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거대 질량은 시공간을 왜곡하며 빛의 경로마저 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블랙홀의 뒤쪽을 앞쪽에서 동시에 보게 된다. 이는 가시광선이 직진한다는 인간의 오랜 믿음, 즉 르네상스 이후 서구 문명을 지배해온 선원근법의 붕괴를 의미한다. 보이지 않아야 할 곳이 보이는 이 비현실적인 사실주의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우주의 가장 정직한 얼굴이기도 하다.

 

러시아 성상화: 관찰자를 포용하는 ()의 공간

이러한 우주적 굴절을 보며 러시아의 사상가 파벨 플로렌스키(Pavel Florensky)가 주창한 역원근법(Reverse Perspective)’을 떠올리게 된. 14~15세기 러시아 성상화(Icon) 속 사물들은 멀어질수록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넓어진다. 소실점은 화면 뒤편이 아닌, 그림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마음속에 맺힌다.

플로렌스키는 그의 저서 역원근법(1920)에서 선원근법을 영혼이 없는 기계적인 시각이라 비판하며, 역원근법이야말로 대상의 실재를 온전히 담아내려는 영성적 시도라고 보았다. 성상화 속에서 상자의 옆면과 윗면, 심지어 뒷면의 기운까지 한꺼번에 드러나는 이유는, 성스러운 대상은 인간의 유한한 시선에 갇히는 존재가 아니라 관찰자를 향해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껴안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블랙홀이 뒤쪽의 빛을 앞쪽으로 보내주듯, 성상화는 보이지 않는 신성(神性)의 이면을 인간의 시선 앞으로 기꺼이 끌어당긴다.

 

책거리, 소유를 넘어선 의 다정함

이 따뜻한 시선은 조선 후기의 책거리(冊巨里)’ 그림에서도 발견된다. 정조 시대에 유행한 책가도와 책거리는 서구적 투시법을 수용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역원근법을 혼용했다. 책장의 윗면과 옆면이 동시에 보이고, 뒤로 갈수록 책의 부피가 커지는 표현은 시각적 오류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지극한 관심의 표현이다. 책거리를 그린 화공들은 대상의 어느 한 면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소실점을 향해 사라져가는 사물이 아니라, 나를 향해 다가와 말을 거는 사물들. 책거리에 투영된 역원근법은 지식과 사물을 내 시야 아래 두려는 권력적 시선이 아니라, 사물의 다각적인 면모를 한 화면에 담아내어 그 본질과 온기를 나누고자 했던 조선 선비들의 다정한 완물상지(玩物喪志)’의 미학을 보여준다.

 

꺾인 빛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

<인터스텔라>의 블랙홀과 러시아의 성상화, 그리고 조선의 책거리는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가, 아니면 존재의 전부를 마주하고 있는가.”

빛이 꺾여 뒤쪽을 보여주는 현상은 물리학적으로는 시공간의 왜곡이지만, 인문학적으로는 이해의 확장이다. 내 눈앞에 보이는 단편적인 모습이 전부라고 믿는 오만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블랙홀 너머의 빛을, 성자의 감추어진 슬픔을, 책장에 꽂힌 지혜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직선으로만 뻗어 나가는 시선은 차갑고 단호하지만, 중력에 의해 굽이치고 역원근법으로 펼쳐진 시선은 대상을 감싸안는 온기를 품는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기어이 시선에 닿게 하려는 우주와 예술의 노력. 그 구부러진 빛의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진실에 가닿는 법을 배운다. 세상의 모든 뒤편은 사실 우리가 먼저 손 내밀어주길 기다리는 앞면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