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황색 해머, 회색 블록, 바닥에 프린트된 거대한 흑백 이미지(사진), 느슨하고 중성적인 의상, 파란색과 흰색 패턴의 퍼 코트, 오렌지색 가발, 큰 카메라, 큰 향수병, 토크쇼, 검은 상자, 혀를 내민 고양이 탈 그리고 조명 등 다양한 상징이 촘촘하게 중복·반복되며 흩어졌다가 사라지는 감각적인 무대. 이야기의 시간이 아니라 편집의 시간으로 움직이는 무대.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스펙터클로 화려함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결핍을 경쾌한 우울로 펼친 알렉산더 에크만의 <HAMMER>가 지난 11월 21일, 22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랐다. <HAMMER>가 전달하는 바는 분명하다. 떠밀린 자아도취와 허위에 허덕이며 온라인을 부유하는 삶 속에서 ‘진실된 것’은 무엇인가.
이 작품을 분석한 글이 이미 많은 만큼, 여기서는 안무와 춤의 세부 분석보다 앞서 열거한 상징의 의미에 집중하고자 한다. 막이 오르면 무대 오른쪽에 비어 있는 작은 상자가 떠 있다. 바닥 전체에는 남녀 얼굴 옆모습 사진이 덮여 있고, 사방은 회색 블록이 담처럼 둘러쳐 있다. 한 남자가 주황색 해머를 들고 나타나 상자에 해머를 집어넣으면서 작품이 시작된다. 작품 제목이기도 한 해머는 원래 파괴와 폭력의 상징이지만, 이 작품에서 해머는 개인을 상품으로 만들고 이미지로 객체화하는 시스템을 깨려는 의지다. 한 걸음 나아가 해머의 주황색과 향수병 상표 ‘No. 5 HAMMER’는 해머조차 브랜드로 유통되는 현실을 비트는 블랙 유머다. 다시 말해, 시스템을 깨려는 의지이면서도 그 저항조차 상품화되는 시대의 자기 패러디다.
바닥에 프린트된 대형 흑백 이미지가 상징하는 바도 단순하지 않다. 흑백사진은 이미 지나가 버린 순간이다. 모두가 누군가의 이미지를 밟고, 그 위에서 자기를 드러낸다. 사진의 조화로운 구도는 무용수들의 폭주, 개별적 과시, 해체되는 집단 안에서 계속 어긋나고, 가려진다.
작품 초반부터 등장하는 회색 블록은 다기능적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블록이 ‘위에 서기 위한 자리’로 ‘미세한 계단식 위계’를 상징한다. 블록 위로 올라서는 순간, 각자는 잠시 ‘선택된 장면’이 된다. 그러나 그 장면의 권리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다음 컷에서는 자리도 의미도 빠르게 교체된다. 블록이 곳곳에 놓이는 순간 무대는 평평한 댄스 플로어에서 깨진 도시의 모듈로 변하고, 분절된 개인 영역으로 쪼개지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이 회색은 유예된 불안이다. 언제든 다른 구성으로 재배열될 수 있는 도시, 언제든 다른 자리에 놓일 수 있는 자아를 상징하는 색이다.
1막 후반에 무용수들이 객석으로 퍼져 나와 인사를 나누며 관객의 시선과 휴대폰 앞에서 온갖 포즈를 취한다. 작품 모티브인 자기 연출의 욕망과 인정 욕구를, 관객을 통해 현실처럼 호출한 장면이다. 한편으로 관객 서비스로 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주제를 강화하는 연출의 의도인데, ‘인정 욕망’의 재현을 넘어, 인정이 작동하는 방식, 즉 선택과 편집의 윤리를 관객이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다. 이 장치는 관객의 동의, 쾌감, 불편이 만들어 내는 미학적 의미까지 생각하게 한다.
2막에서 강하게 작동하는 영상과 라이브 카메라는 감시의 시선이자, 자기애적 응시, 필터와 편집을 통한 이미지의 폭력이다. 이로써 이미지가 몸을 지배하고 스크린이 무대를 장악하는 시대를 무대 위에 그대로 겹쳐 놓는다. 의상은 전체적으로 과장되고 유머러스하다. 1막에서 느슨하고 중성적인 옷은 꾸미기보다 함께 노는 공동체를 뒷받침하는 춤추는 몸을 위한 의상이다. 2막에 나오는 파란·흰색 패턴의 퍼 코트, 몸의 곡선을 과장하는 보디슈트, 오렌지색 가발과 강한 메이크업은 더 이상 ‘춤추는 사람’이 아니라 광고 속 캐릭터, 향수병을 든 모델, 브랜드의 아바타처럼 보인다. 여기서 의상은 ‘몸의 해석’이 아니라 ‘몸의 패키징’이다. 각자의 개성은 유행하는 스타일로 치환되고, 스타일은 다시 판매할 수 있는 서사로 편집된다.
조명도 짚어볼 만하다. 1막에서 넓고 부드럽게 무대 전체를 균등하게 덮는 빛은 ‘함께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다. 2막에서 좁은 스팟, 콘트라스트, 백라이트는 ‘골라주는 빛’으로 칭찬과 비난, 주목과 무시에 대한 은유다. 또한 스팟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싸우거나, 스팟 안에서 과장된 포즈를 취하는 것으로 자기 연출의 욕망을 드러내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혀를 내밀고 있는 큰 고양이 탈은 앞서 보여 준 여러 상징과 의미를 한 번에 조롱하고 무력화시키는 전복적 장치로 볼 수 있다. 고양이 탈은 해머의 다중적 상징과 함께 이 작품이 정리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향해 해머를 내리칠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상징의 핵심이다.
이처럼 <해머>는 상징 의미를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작품의 메시지는 관객이 직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어서, 주제 찾기에 굳이 애쓸 필요가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잉의 세계가 결국 ‘어떤 부분이 남고 어떤 부분이 지워지는가’라는 문제로 수렴한다는 것이다. <HAMMER>의 핵심은 무분별한 과시가 아니라 컷의 규칙이다. 이번 부산 공연은 원작보다 러닝 타임이 짧았다. 동성, 이성 간 애정 행위를 묘사한 아다지오는 아예 빠졌고, 일부 군무도 길이를 줄인 것 같다. 물론 이 상태만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하기 충분했고, 스펙터클도 모자라지 않았지만,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번 부산 공연의 축약이 단순한 생략이 아니고 <HAMMER>가 이 시대를 다루는 방식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우리는 늘 ‘잘린 장면’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필터링된 감정으로 관계를 유지한다. 부산에서 더 짧아진 <HAMMER>가 역설적으로 그 사실을 다시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빠졌는지를 묻는 순간, 우리는 이미 이미지의 편집 윤리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결국 이 작품에서 해머가 겨누는 것이 무대 위에서 보여 준 현실 시스템만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편리하게 즐김으로써 시스템을 갈수록 두텁게 만드는, 자각하지 못하는 우리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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